
애초부터 한국 SF가 그닥 두터운 편은 아니었으니, 새로운 신화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영화를 둘러싼 논란들이 무색하고 민망해질 정도로, 이 영화 자체는 상당히 가볍고-즉, 생각없이 볼 수 있고 어쩌면 유치하다고 할 수 있는, 후뢰시맨과 같은 전대물이나 티라노의 발톱 등 심감독의 예전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센스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듯 하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의도적인 허술함(이 허술함들이 의도되지 않았다면 좀 심각한 거지만)-아트록스의 수장이 손을 휙 저으니 바닥에서 폭탄이 빠바방 하고 터지는 장면이나, '심씨네 동물원''용가리 통뼈'와 같은 B급 개그들...-이라고 해야하나.
여기서부터 스포일러 의혹
1. 진중권 등 많은 비평가(socalled 디까)들이 영화에 대해 가장 지적하는 것 중 하나가, 소위 '애국심 마케팅'이라는 것이다. (고등학교때 모교를 찾아와 했던 강연회를 비롯해서)언론과 TV에서 감독이 계속 언급하듯이, 영화 한편이 중소기업 수백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그의 지론은 애국심 마케팅 논란 이전에 영화를 이미 잉여가치가 높은 하나의 산업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산업으로서의 영화라는 논리와 깊게 연결되어 있는 것은 그것이 100% 한국 기술로 만들어진 '우리의 기술/영화'라는 것이었다. 헐리우드를 정복할 한국영화, 우리기술이라는 마케팅 전략과 더불어 아리랑이나 'this is a korean legend'와 같이 영화 자체도 한국사람들의 애국심을 불러 일으킬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는 비판이 있었는데
적어도 영화의 text안에서 애국심을 부추기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는건 도식화된 국가주의 비판에 영화를 끼워맞추는게 아닌가 할 정도로 무리한 시도이거나 판단 미스이거나. 물론 영화를 둘러싼 맥락은 충분히 자본주의 상품화와 결부된 애국주의가 만만치 않게 도사리고 있지만, 적어도 영화 안은 평온했다. 오히려,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오리엔탈 마케팅'이라고 하는게 나으려나. 할리우드/서구에서 비서구 출신의 감독/영화가 주목받고 성공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동양적인것'을 강조하는 전략이라면, 심감독은 이 전략을 충실히 이행하는 듯 했다. 원음대로 발음되는 '이무기''여의주''부라퀴', 500년전 조선의 마을풍경, 서양의 드래곤과는 다른 동양적 '용'의 모습, 오프닝에서 보여지는 한국 민화들로 오버랩되는 한글(나랏말싸미..)의 모습들과 영화 후반부를 장식하는 아리랑의 선율. 익숙하디 익숙해서 오히려 한국 관객들은 헛웃음을 낼 수 있는 이런 장면들은, 서구 관객들에게는 이국적인 동양의 분위기라는 매력이 될 수 있으리라. 심감독이 결코 이게 한국시장을 주된 목표로 잡은것이 아니라고 하면-text내에서 보여지는 '한국적'인 것들은 저 바다 너머에서 '이국적'으로 소비되기 위해 배치되었다고 하는게 더 맞을지도.
2. 디워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비판이긴 한데, 서사가 없어도 너무 없다. 그저 이야기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재료들-새라와 이든의 전생에서의 사랑, FBI의 음모, 두 이무기 등-을 영화시간에 걸쳐 흩뿌려 놓았을 뿐, 그걸로 뭔가 먹음직스러운 요리를 만들지는 못했다고나 할까. 하긴, 이 영화는 오히려 조미료가 메인 재료인 영화이기 때문에 서사 자체는 애초부터 신경쓸 대상이 아닌지도 모른다. 근데, 이게 마니악한 B급 괴수물(울트라맨 같은)이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런 영화에서 중요한거라곤 도시를 박살내는 괴물의 실력과 다양한 괴수 캐릭터이기 때문에)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노린다면 좀 심각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CG는 장족의 발전을 했지만, 그걸 재료삼아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수준은 티라노의 발톱시절과 크게 달라진게 없다. 영화가 게임 동영상이나 트레일러의 합집합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면-
마지막 부분, 새라와 이든과의 이별은 도저히 슬퍼하기가 힘들다-오히려 용이 대신 눈물을 흘리며, 그 눈물을 보고 웃는게 더 쉽다. 둘이 어떻게 사랑하고 어떤 인연인지가 그 둘의 전생에 대한 개괄로 얼렁뚱땅 넘어가며, 그저 '운명이기에' 사랑하고 뽀뽀한다. 아마 우호적으로 받아들이자면 - 불교적이고 윤회론적인 '인연'이라는 것이 영화에서는 차마 충분히 담지 못했던 저 과거의 삶에서부터 끈덕지게 이어온 것, 서구적인 마인드를 가진 우리는 결코 이해할 수 없다... 고 할 수 있겠지만 감독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선한 이무기는 왜 선하고 부라퀴는 왜 악한지. 난 오히려 부라퀴가 불타죽을때가 더 안스럽더라. 선한 이무기가 용이 된다고 해서 새라가 현세에 살아남는것도 아닌데, 오히려 부라퀴가 기껏 고생해서 새라를 찾아놓으니까 중간에 와서 채가는 '선한 이무기'가 더 구린놈 아닌가? 지 손에 피 안묻히고 승천하겠다, 뭐 이런 느낌이다. 프리즌 브레이크에서 볼 수 있는 '악독한 국가권력'의 이미지를 새라를 죽이려는 FBI를 통해 보여주려 하기도 했지만, 너무 뻔한 설정이기도 하고 깊이도 없어서 뭐 그닥. LA를 때려부시는 신에서는 헬기랑 괴물들 싸우는데 정신이 팔려 주인공이 뭐하고 있는지도 안보여주더라.
3. 사실 뭐 그닥 이야기할 것도 없는 영화다. 영화만 본다면. 그저 마니악한 괴수물 취향을 지니거나, 혹은 그저 한편의 스펙터클을 즐기고 싶다면 맘편하게 와서 LA를 두드려부수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심감독이 서울을 배경으로 한 괴수물 한편 찍어줬으면 좋겠다. 미국도시는 워낙 자주 두드려맞았고, 도쿄도 침몰했는데 서울은 기껏해야 정부종합청사나(한반도) 백화점(쉬리)이 폭발하거나, 참치만한 괴물이 나돌아다니는게 전부였다... 원래 생각없이 보기위한 때려부수는 영화는 현지에서 보는게 최고다)
근데 이 영화가 한국영화의 헐리우드 진출을 위한 선봉대, 중소기업 수백수천개와 맞바꿀 수 있는 굴뚝없는 공장, 외화벌이의 희망이 되면서 어느새 디워는 영화가 아닌 그 무언가가 되어버린, 이제 속이 빈 채 굴러가는 눈덩이와 같이 한국사회의 온갖 잡다한 찌꺼기들을 두르고 미친듯이 굴러가고 있는. 그냥 아무생각없이 디워를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직 심감독은 꿈이 많은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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