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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들의 땀내가 진동하는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진정성이 담긴 여성영화다. 영화평론가 강유정이 스포츠 영화의 관습을 버리고 인간 드라마의 성취를 이룬 임순례 감독을 만나, 그 진심을 들었다.
스포츠 영화라고 한다. 게다가 지는 스포츠 영화라고 한다. 좀 막막하다. 한국에서 스포츠 영화가 잘된 사례가 없다. 생각해보자. 유오성이 출연했던 영화 <챔피언>(2002)은 곽경택 감독의 주가를 하락세로 반전시켰다. <역도산>(2004)도 마찬가지이다. 송해성, 설경구라는 이름값에 기대를 걸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그러고 보니 제대로 된 스포츠 영화라고 할 만한 것도 없다. 대부분 드라마가 승하다보니 스포츠를 소재로 한 ‘드라마’로만 기억된다.
이는 스포츠 영화의 중요한 특질을 증거하는 상황이다. 스포츠를 일컬어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들 한다. 스포츠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중계방송처럼 박진감 넘치는 경기 장면을 원하는 게 아니다. 그들이 바라는 건 경기를 지켜보는 내내 심장을 움켜쥐게 한 그 사람들, 그 경기의 흐름과 같은 정서적 격동이며 그 격동의 드라마인 셈이다. 예컨대 2002년 월드컵 경기 중 몇몇 박빙의 승부는 몇 년씩이나 거듭 케이블 TV를 통해 재방송되었다. 보고 또 보는데도 뭉클하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그 뭉클함의 뒤에는 몇 가지 인상적인 이미지들이 있다. 노장 황선홍 선수가 이마에 붕대를 감았고, 김태영 선수의 코뼈에 금이 갔다. 사람들은 땀과 섞인 헤모글로빈의 흔적 앞에서 심장이 폭발할 것 같은 격정을 느꼈다. 드라마란, 이런 것이다. 피와 땀, 고통의 몸짓이 없다면 스포츠에 ‘드라마’라는 말을 굳이 갖다 붙이지 않을 것이다.
스포츠 영화 하면 떠오르는 상투구들이 있다. 록키가 비장하면서도 달콤한 음악을 배경으로 새벽을 가르며 뛴다든가(<록키>), 반젤리스의 음악을 등에 달고 마라토너가 유유히 들어오기도(<불의 전차>) 한다. 스포츠는 일종의 장르영화다. 나름의 규칙과 법칙이 있고 관객이 기대하는 관습이 견고하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관습은 영화적 허용을 가능하게 한다. 주인공이 중요한 경기 앞에서 좌절을 겪는다거나 경기에 들어가기 앞서 사고를 당한다는 식의 설정 말이다. <주먹이 운다>(2005)의 두 복서가 어쩜 그렇게 극한 상황에 놓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이 영화적 허용 안에서 용인된다.
임순례 감독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은 분명 스포츠 영화이다. 그런데 이 스포츠를 구성하는 것들이 만만치 않다. 좀 격하게 말하자면 안 되는 것들만 모아놓았다. 첫째, 비인기 종목인 핸드볼. 둘째, 단체경기. 야구나 축구, 농구처럼 프로 체제가 완비된 인기 종목이라면 모를까 국가대표 이름이나 얼굴도 모르는 선수들이 단체로 나오는 핸드볼이라니, 모험이 아닐 수 없다. 대부분 스포츠 영화는, 주인공이 선명한 그러니까 일대일 게임 위주였다. 권투나 육상이 스포츠 영화의 단골 메뉴였다는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세 번째, 여자 경기이다. 야구나 축구는 여자 경기가 아예 없다. 농구, 배구는 여자 프로 경기가 있어도 비인기이기는 마찬가지다.
더 심각한 건 이 여자들이 대부분 아줌마다. 레이싱걸을 스포츠 종사자라고 부르기 어렵지만 그와 비슷한 여성들은 늘 경기장 주변에 있다. 하지만 그녀들은 선수가 아니고 게다가 아줌마는 더더욱 아니다. <우생순>은 아줌마를 전면에 내세웠다. 마지막으로, <우생순>은 실패를 예고한 채 시작된 경기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실화에서 비롯된 이 이야기는 이미 결론을 공표했다. “그녀들은 집니다”라고. 요약하면 이렇다. 아줌마들이 잔뜩 등장해서 결국 지고야 마는 비인기 단체종목, 핸드볼 경기를 보여준다. 어떤 흥행 요소가 여기에 있을까? 임순례 감독은 웃으며 말한다. “<슈퍼스타 감사용>(2004)이 있었잖아요.”

착한 여성영화
그랬다. 임순례 감독은 잔뜩 힘이 들어간 질문에 웃으며 답했다. 그는 언제나 무거운 영화적 주제를 다뤄왔다. 주제는 무거웠지만 주제에 대한 접근법은 한없이 따뜻하고 가벼웠다. 어깨에 힘을 빼고, 그녀는 문제의 주변을 서성이며 먼저 목소리를 내서 떠들기보다는 보여주려 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나 <그녀의 무게>(2003, <여섯 개의 시선> 중) 같은 전작에서도 그랬다.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여자가, 그것도 비인기 종목 핸드볼에 지는 경기라니. 참 무겁게만 보인다.
“한국에서 여자가 운동을 한다는 것, 그러니까 프로 종목이 아니라면, 그건 정말 힘든 일이다. 물론 골프 같은 몇몇 운동은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핸드볼은 그렇지 못하다. 관객에게는 소외된 종목의 운동을 하는 사람 정도로 비춰질 것 같았다. 결론은 아줌마들이 운동을 한다는 거였다. 난 지는 경기를 하는, 인기 없는 경기에 목숨 거는 여자들을 통해 최선을 다했을 때의 감동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1등이 주는 감동이 아니라 최선을 다한 기쁨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시되는 것들, 그 무시되는 소중한 가치를 살려보고 싶었다.”
대한민국 여성, 게다가 아줌마는 특정한 의미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의도적으로 강조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결국 이 영화는 ‘여성영화’라는 꼬리표를 달 수밖에 없다. <우생순>은 여성, 거기다 결혼이라는 입사 과정을 겪었다는 이유로 이중, 삼중으로 소외되는 여성을 보여준다. 한미숙(문소리)의 결혼생활은 덫에 가깝다. 뭘 해도 나아지는 것이 없고 나빠지기만 한다.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코트 옆에 세워둔 채 운동을 한다. 이혼 경력이 문제 되는 혜경(김정은) 역시 다를 바 없다.
이혼녀가 등장해서 여성의 권위나 주체성을 외치지는 않지만 그녀들은 조곤조곤 분명하게 여성에 대해 말한다. “전면적으로 내세울 수는 없었지만 난 결국 이 작품이 여성영화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아줌마는 특별하다. 이중적 의미라고도 할 수 있는데, 대개 사람들은 네거티브한 면만 강조한다. 자기중심적이고 가족 이기주의적인 악질적 이익집단으로 말이다. 그런데 난 아줌마라는 호명 속에 담긴 긍정적인 것들을 내세우고 싶었다. 실제 임오경 선수의 생활이 한미숙의 삶에 투영된 부분이 있다. 임오경 선수는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코트에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난 그게 아줌마의 큰 힘 중 하나라고 보았다. 한국의 아줌마들은 슈퍼우먼이 아니라 해도 1인 3역 정도는 거뜬히 해낸다. 난 그런 모습을 보았다.”
중요한 것은 <우생순>이 결국 수동적 여성의 입장에서 현실을 수용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미숙은 끝까지 남편을 책임지기 위해 잠깐 경기를 포기하기까지 한다. 남편의 빚을 함께 떠안으면서 그 덫에서 빠져나오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혜경은 여성이기 때문에 감독직을 계속 맡길 수 없다는 말에 크게 따지지 않는다. “남자 감독이라면 이혼 경력을 따지겠느냐”고 쏘아붙이지만, 결국 자존심 문제라고 여기며 팀에 복귀한다. 그러고 보니 <우생순>에는 착한 여자들투성이다. 미숙이는 빚쟁이에 쫓기는 남편의 업보를 감당하느라 허덕이고, 혜경은 여자는 안 돼, 라는 말 앞에서도 대승적인 인내를 발휘한다. 이 여자들, 너무 착한 것 아닐까?
“한미숙은 착한 여자가 아니다. 안승필(엄태웅)에게도 할 말은 다 한다. 남편에게 너무 순종적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이혼한다고 뭐가 나아질까? 착한 것이 나쁜 것도 아니다. 책임감, 안쓰러움, 그런 감정이 있었을 것이다. 남편은 전직 코치인데, 전직 코치라면 아마 초등학교 시절부터 같이 운동을 한 사람일 것이다. 난 미숙과 남편의 관계가 함께 운동했던 사람들끼리의 끈적한 연대감이라고 봤다. 남편으로 보아서 참는 게 아니라, 동료이기 때문에 남편을 이해한다. 혜경을 통해서는 한국의 현실을 좀 보여주고 싶었다. 끝까지 모든 노력을 다 한다고 해서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혜경이 국가대표 감독을 하려고 하지만 한국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 모든 종목 여자 대표팀을 살펴보라. 감독은 다 남자이다. 선수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바꾸고 싶지만 바꿔지지 않는 것, 쉽게 변하지 않는 것들도 보여주고 싶었다.”

동료애, 연대, 그리고 인간
끄덕끄덕, 공감이 간다. <우생순>을 보는 내내 부러웠던 것은 바로 ‘그녀들’이었다. 한국 사회, 아니 사회에서 그녀를 ‘그녀들’로 묶이도록 놔두지 않는다. 아니, 여성들은 연대가 불가능한 것으로 낙인찍고 여성 스스로도 자신들의 연대를 부정한다. 최근에 등장하고 있는 공포영화는 사회의 주요 세력으로 성장한 여성들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녀들은 서로를 못 이기고 못 죽여서 안달이다. 경쟁심 때문에, 시기심 때문에 모녀관계, 자매관계, 친구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죽였다. <우생순>의 여자들은 서로를 위해 자신을 내건다. 마치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에 등장하는 소대원들처럼 서로를 위해 자신을 던진다. 타인의 불행에 눈물 흘리며 친구의 소명을 위해 목숨 걸고 뛴다. 분열의 매개자이자 사회 교란의 유인자가 아니라 그녀들은 하나였던 셈이다.
“강인하고 똑똑한 여자들이지만 사회생활을 할 때 여자들에게 시선들은 냉담하다. 여성을 향한 시선은 여전히 보수적이다. 항상 남자가 감독이어야 한다거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여성들이 먼저 뜨악하게 받아들이고 사생활과 분리시키지 못하는 측면도 있었다. 그런데 스포츠는 좀 다른 것 같다. 단체경기이기 때문이라서 더욱 그럴 테지만, 영화만을 찍을 때는 경험할 수 없었던 연대감을 경험했다. 몸을 부딪치고 최악의 컨디션까지 서로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것도 큰 이유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우생순>은 몇 개의 갈등 위에서 전개된다. 영화는 우선 대표팀에 복귀할 것이냐, 말 것이냐로 고민하는 미숙의 내면에 초점을 맞춘다. 그 다음에는 혜경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신세대와 자신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최선으로 믿는 구세대 간의 갈등이 이어진다. 남자 감독과 여성 선수들 간의 갈등도 있다. 흥미로운 건 신세대와 구세대 간의 갈등이다. 이어폰을 끼고, 유럽식 훈련 방식으로의 전환을 환대하며, 저녁이면 싸이월드에 접속해서 미니홈피를 가꾸는 10대 선수. 그리고 여전히 피나는 노력과 훈련만이 성공과 우승의 지름길이라고 여기는 막가파 언니들. 영화는 노련함과 끈적한 연대감으로 묶인데다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 언니들의 편을 들어주는 듯싶다.
“핸드볼뿐만이 아니다. 20대 초반 아이들을 보면 뭐랄까, 자기 소신이 매우 뚜렷하고 주관이 있는 듯 보이지만,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이 좀 다르다. 그래, 다르다라는 표현이 옳겠다. 모임이나 같이한다는 것, 함께라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전혀 무관심하다. 운동선수들도 많이 바뀌었다는 말을 들었다. 신세대들의 긍정성도 있지만, 운동이나 단체경기에선 그 개성들이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을 성싶었다. 그런데 난 갈등에 대해서 좀 다르게 생각한다. 누구나 두 사람 이상이 만나면 갈등이 생긴다. 신/구, 여성/남성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은 모두 몰이해에서 빚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신, 구처럼 집단으로 묶어서 생각하니까 이해되지 않는 거다.”
개인으로 하나씩 이해한다면 모든 갈등이 해소된다는 뜻인가? “적어도 난, 그렇다. 사람들이 이 영화를 착한 영화라고 한다. 난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고 본다. 캐릭터를 이해하지 못해서이지, 상대방 캐릭터를 이해하게 된다면 세상에 나쁜 사람이란 게 있을 수 있을까? 좋은 의도,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아니라 개인, 개인으로 본다면 많은 갈등들이 해소될 수 있다.”
위대한 개인주의지만, 때론 이런 소우주론은 집단 간의 필연적 갈등을 봉합하기도 한다. 착한 영화 <우생순>의 어떤 지점들 말이다. 영화 속 어떤 장면들은 정말 가능할까, 라는 의구심을 준다. 미숙이 최종 엔트리에 등록되어 있지 않았는데 갑자기 후반전에 선수로 뛴다거나, 국가대표 선수가 일주일간 무단이탈을 했는데 선수들만 눈감으면 복귀가 가능한 상황. 심지어 태릉선수촌에 아이가 함께 입소한다? 따뜻한 풍경이지만 현실성은 없지 않을까?
“물론 현실성 없다. 하지만 영화적 허용 안에서 그 비현실성을 극복해보고 싶었다. 어떤 점에서는 나에게 있는 판타지라고도 할 수 있겠다. 연대, 우정, 희생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런 정서들은 미숙과 혜경이 어린 시절부터 함께 동거동락하며 운동하고 커온 사이라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극중에서 둘은 라이벌이지만 가까운 사이이다. 팀 메이트라는 게 아주 가까운 사이 아닐까? 그런 동료애를 잘 보여주고 싶었고, 그 진한 우정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았다.”
분명 <우생순>에는 나쁜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서로 삐걱거렸던 사람들이 시간을 두고 알아가면서 든든한 지원군으로 바뀐다. 감독들은 선수들 편에 서게 되고, 아줌마라고 무시하던 후배들이 먼저 존경한다. 뭉클해지는 이 순간들은 임순례 감독의 말처럼 판타지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무릇 의미 있는 유토피아임에는 분명하다.

이건 <옹박>같은 영화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가보자. 스포츠 영화, 게다가 비인기 종목인 핸드볼 경기 영화이다. 왜, 지금, 이곳에서 핸드볼 영화로 생애 최고의 순간을 기록한 것일까?
“처음 기획할 때는 실제 경기의 느낌이 워낙 강했다. 실상 스포츠를 소재로 한다는 것 너무나 뻔하다. 역경이 있고 그걸 딛고 승리하는 이야기니 말이다. 진부했다. 인간 승리, 그런 진부함에도 불구하고 난 스포츠 영화에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고 본다. 그건 어쩌면 상업적 힘이기도 하다. MK픽처스 심재명 대표가 상업영화로 이 작품을 기획했을 때 이 점을 보지 않았을까? 아줌마가 등장하는 여성영화? 힘들다. 솔직히. 대중영화로서 말이다. 성공을 점칠 수 없는 상황에서 아줌마, 여성영화라는 위험과 불안을 스포츠 영화의 문법이 위무해준 게 사실이다. 난 이 기획을 연출하면서 휴먼 드라마로 강조하고 싶었다. 하지만 경기 장면의 묘사가 리얼해야만 했다. 경기 자체의 긴장감이 일단 조성돼야 하니 말이다. 그런데 문제가 많았다. 엄청난 카메라워크나 사운드 디자인, 여러 가지가 필요했다. 고민했다. 고민하다보니 중요한 것은 드라마이지 경기 자체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핸드볼을, 핸드볼 선수처럼 할 것을 배우들에게 요구했다. No CG, No Stunt, No Wire. 그러니까 이건 <옹박> 같은 영화다.”
황기석 촬영감독의 움직임이 눈에 띄는 것은 아마 임순례 감독의 이 말을 잘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정적인 드라마에서 정서의 흐름과 변화를 잡아내는 데 기민했던 황기석 촬영감독은 스포츠의 역동성이 아니라 역동적 상황에 놓인 한 인간의 표정을 잡았다. 사람들은 한 골이 아니라 그 골을 집어넣는 이의 열정과 능력에 감동한다. 유려한 핸드볼 장면이 아니라 그들의 표정을 보여주었을 때 관객들은 함께 호흡할 수 있다. 경기가 아닌 경기에 담긴 정서를 중계하는 게 아니라 촬영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핸드볼 영화 <우생순>의 개념이었다.
주연급으로 출연한 배우들은 그다지 체력 상태가 좋지 않았다. 심지어 조은지는 첫 촬영 후 구토를 할 정도로 허약했다. 임순례 감독은 “역시 배우는 배우”라고 배우들을 칭찬한다. 배우들의 재능 중 하나가 ‘따라하기’라면 그들은 정말 핸드볼 선수들을 잘 따라했다. 체력은 김정은이 그중 나았지만 허약하기는 문소리, 김지영, 가릴 바가 없었다. TV 드라마 <태왕사신기>와 촬영이 겹쳤던 문소리의 컨디션은 말할 수 없이 최악이었다. 하지만 일단 ‘슛’이 들어가면 그녀들은 달라졌다.
여성 감독, 여성 배우, 여성 제작자가 만든 영화 <우생순>. 그러고 보니 이 영화의 포부가 은근히 당돌하다. “이제 여성들의 개인적이고 내밀한 정서로 영화를 만들기에는 사회가 너무 복잡해졌다. 여성성이라는 것을 내면성이 아닌 다른 시각에서 재발견해야 한다”고 임순례 감독은 말한다. 그의 관심은 일관되게 사회적 약자에 있었다. <우생순>의 여성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견될 수 있다. 영화는 충돌과 갈등의 지점이 아닌 이해의 공통분모를 찾으려 한다.
내 마지막 질문은 이랬다. 미숙의 아이가 늘 이모들과 어울린다면, 그게 아이에게 꼭 행복은 아니지 않을까요? “임오경 선수가 아이를 늘 코트에 데리고 다녔다고 하더군요. 영화 속 아이처럼 거기서 놀고 크고 자란 거죠. 관객들이 눈치 채듯이 그 아이는 맡길 만한 데가 없어요. 그런 상황일 때 저는 아이에게 엄마가 함께 있어주는 게 더 소중할 것이라고 판단했어요. 더 행복할 거라고. 친구들과 놀이방에서 얻는 것 이상을 배울 수 있다고 말이죠.”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어디쯤 있는지에 대한 임순례 감독의 대답이다.
출처 http://www.film2.co.kr/feature/feature_final.asp?mkey=50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