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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 (2007)

본것들 2007/08/18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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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년전 그날, 광주 도청과 금남로를 메웠던 사람들이 모두 각성된 전위투사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리라 - 과학적인 역사인식이 제공해주는 거대서사, 현대사 세미나에서 읽음직한 그런 책들은 그 공간과 시간을 살아갔던 한사람 한사람의 생각과 아픔들은 온전히 전해주지 못하는 것은 맞다. 그래서 영화는 지식인을 최대한 배제하려 했나보다. 큰 뿔테 안경을 쓰고 사람들을 선동하는 운동권 학생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주요 등장인물은 소위 '평범한 시민'들이다. 동생의 죽음에 분노하는 형과 자식의 죽음을 믿지못하는 어머니, 친구의 억울한 죽음에 학교를 뛰쳐나가는 고등학생, 오히려 당시의 한국사회의 제모순의 해결과 독재정권의 타도라는 명확한 문제의식을 가졌던 각성된 이들은 채 한줌도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 공백을 채웠던것은 주변의 아픔에 공감하고 분노하고 거리로 나섰던, 오히려 각성되지 않은 이들이 모였던것이 진실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을것이고, 그러기에 진정 운동이고, 항쟁이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이 사람들에게 집중하는 영화는, 광주를 경험했던 네티즌이 말한대로 '낮은 목소리'가 될 수 있을법도 하다.


 하지만 1.
 지식인, 운동, 정치적 맥락을 최대한으로 탈색한 '그날의 광주'는 그저 배경으로서, 화석화된 스펙터클로서 존재할 뿐이다. 거기, 그날 광주가 있었고, 비극적인 '사태'가 있었고, 그런데 주인공들은 그 한가운데서 슬픈 이별과 아픔을 겪었고. 민우와 신애의 이별, 동생 진우의 죽음, 부인과 자식을 내버려두고 총을 잡는 인봉의 갈등, 자녀를 잃은 어머니의 슬픔, 총탄에 쓰러지는 이들과 이들을 지켜보기만 했던 더 많은 이들.
 이 고통들은 분명히 그날 광주에 존재했던 것이 틀림없을테지만, 문제는, 광주가 이들 고통과 아픔의 총합, 합집합 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 공간과 시간을 살아왔던 사람들이 각자 가지는 아픔과 트라우마와는 다른(하지만 완전히 별개라고 할 수는 없는) 맥락들은 영화에서 안전선 밖으로 밀려나간다. 남아있는것은 관객들의 눈물을 흘리게 만들 수 있는 각각의 사연들. 이들에게 고통을 주는 '공수놈들'은 그저 혜성이 떨어지거나, 우주전쟁이 일어났거나, 괴물이 습격하는것과 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평화로운 일상을 부수고 침입하는 '악'일 뿐.
 그날의 광주를 언급하고 있긴 하지만, 영화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운동도 항쟁도 아닌, (그날로 끝난)사태/비극으로서의 광주. 광주가 영화의 소재로 사용되었다는 점은 그 자체로 고무적일 수 있지만, 그만큼 대한민국 안으로 영토화 되었다는 의미이며, 더 나아가 거대 배급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영화판에서 충분히 '상품화'될 수 있는 수준으로 탈색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것이다. 민주화 20년이 자본화 20년과 크게 엇갈리지 않아온 한국에서, 이제 광주는 이러한 방식으로 기억/소비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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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애의 입을 빌어, 영화는 '우리를 잊지 말아달라'고 절규한다. 망각과 기억의 사이에 전선이 있다면, 수많은 기억 사이에도 그 기억만큼의 전선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휴지통으로 던져버릴 수 없는 것은 - 그것이 화석화된 일회성 소비라 할지라도, 영화가 광주를 재현하는 방식이 비/탈정치적이고, 혹은 불쾌할 지라도 적어도 현실에서 광주는 망각과 기억 사이의 싸움이 지속적으로 벌어지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네이버 지식in에 '화려한 휴가가 정말 실제 있었던 사건인가요?'라는 질문이 올라오는걸 봐서는, 적어도 망각의 늪에서 광주를 끄집어 냈다는 점에서, 제작자 유인택씨가 말하듯('화려한 휴가' 제작 유인택 대표의 반론 - 이 영화가 죽어가는 '오월'을 부활시켰다) 대중상업영화로서의 역할은 꽤 적절히 해내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려나. (하지만 제작자 스스로가 이것을 '대중상업영화'로 명명했다고 해도, '광주'라는 소재가 가지는 역사성과 그 트라우마가 가지는 무게감을 마음대로 희석할 수 있는것은 아니라고 본다. 나는 아직 남한사회가 '광주라는 소재 자체가 가져야만 하는 의무' 라는것을 이야기해도 괜찮을 정도의 역사적 척박함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난 사실 어느새 젊은이들의 무지함을 탓하는 노인네가 된 기분인데, 여러 게시판에 줄기차게 올라오는 '화휴 이거 진짜냐'고 묻는 글들을 보면서 절망이랄까, 탄식이랄까. 그 역사 자체가 망각되어가는 상황에서,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 기억 사이의 투쟁은 어쩌면 무의미한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곤 하는것이다. 스펙터클이라 할지라도 - 과거를 환기시켰다는 점, 그 점에서 영화에 칭찬을 숨길 수는 없을 것이며, 또 이런 영화가 유용할 정도로 척박한 기억, 깊어져가는 망각에 절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3.
  어쨌든 나는 광주를 직접 경험하지 않았으며, 대신 학습하였으며, 광주를 순례할법한(한적은 없는다) 정치적 지향을 가진 쁘띠먹물로서 광주를 기억하려고 한다. 민주화 운동이 아닌 민중항쟁으로 명명하며, 그것을 끊임없이 대한민국으로부터 탈영토화 시키는, 그리하여 '끝나지 않은 광주'라는 이름으로 요약될만한 그런 역사인식, 해석, 기억을 갖고자 한다. 고민되는것은, 그 상처를 온몸으로 받아왓으며, 그/녀들이 생각할 수 있는 최대한의 권위인 국가가 자신들의 고통을 인정해주길 워하는 이들의 기억과, 나의 기억은 그닥 조화롭게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점. 광주를 끊임없이 불안정하게 만들고, 그것을 어떻게든 현재진행형으로 만드려는, 서기대신 민중진군을 쓰는 그런 이들의 기억과, 이제 그 상처를 오롯이 단지에 담아 묘역 한구석에 모셔두고, 더이상의 상처를 되새김질함과 '민주화 운동'이라는 명명이 의심받는것을 용서치 못할 이들의 기억은 - 망각이라는 거대한 함정과 광주폭도 운운하는 난봉꾼들의 단칸방을 제외한 - 그닥 넓지 않은 땅에서 서로, 역시 싸울수밖에 없는 것인지.

 덧.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결혼식 장면(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이 결혼이 절대 현실이 될 수 없음을 이미 알고 있는 신애의 표정은 매우 슬프다)과, 배경음악으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 흘러나왔을 때 - 뭔가 윤상원 열사와 관련이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다. 윤상원 열사는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했고, 도청에서 사망했는데 야학에 있었던 박기순 열사와 영혼결혼식이 이루어졌으며, 그 때 나온 노래기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 하더라. 나중에 찾아보니 원래 시나리오는 윤상원열사를 주인공으로 씌어졌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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