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엇대는 그런 부정을 통해서 학생들이 부정의 부정을
배우기를 바랐지만,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사람들은 나의 그런 은밀한 성의를 '냉소적'이란 한마디 말로
단칼에 잘랐고, 그래서 내심 무척 고독했던 것이사실이다...
- 정운영, 학회평론 8호 「過客의 賦 」 中
이제 고인이 된 정운영 선생이 94년, '관악에서의 과객질'을 끝내며 학회평론에 실었던 길지 않은 글을, 난 참 좋아한다. 사실 그의 연구들을 많이 접하고 공부한것도 아니고, 그의 말년 행보에 대한 의심과 변명들 사이에서 다소 헷갈려하기도 하지만, 십수년이라는 시간적 간격이 존재하는 오래된 글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쁘띠 지식인으로 위치지으면서 공짜밥을 먹고 사는 나에게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매력을 준다. '아직도' 혁명을 믿는다는것이 시대착오적이거나 치기어린 열정으로 치부되고, 그 치열함이 사라진 자리에 매끄러운 냉소들이 스물스물 자리잡는 지금, 여기 대학교라는 시공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유념하면서 슬퍼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비슷한 매력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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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부턴지-아주 오래전일수도 있고- 모르겠지만, 지적인 냉소는 어느샌가 세련된 트렌드가 되어버린 듯 하다. 어떠한 진지한 개입의 끈도 놓아버린 어쩌면 비윤리적이고 엘리트적일수 있는 태도는 어느새 '쿨한 것'으로 치환되고, 오히려 아직 문제를 끙끙대며 풀려고 하는 것들이 이제 치기어린 시대착오가 되는 시대. 비웃음을이나 동정을 사거나, 위선과 폭력이라고 아예 욕을 먹거나. 그 치욕들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곰팡이나는 책으로 담을 쌓고 자위행위를 하는 것일지도. 4.19때 학생들이 봉쇄한 도서관에 쇠사슬을 끊고 들어가 책을 읽었다는 (지금 서울대 공대 교수가 되었다고 하는)이들이 조롱당하는것과, 이제 그 도서관 앞에서 해방을 말하는 이들이 시끄럽다고 욕을 먹는 것 사이의 그 간극만큼, 세상은 좋아진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따지고 보면, 현재 남한에서 그닥 유쾌하지 않은 공부를 하는 사람들에게, 냉소는 피할 수 없는 종착역, 아포리아일지도 모른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진지하고도 치열한 성찰과 학습, 행동들이 결국 신문 정치면을 장식하는 인물들의 슈퍼마켓 진열대에 전시되고, 그 찬란하던 해방의 서사들이 빛을 잃어가는 상황에서 시니컬함은 먹물이 자신을 방어하고 위안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런지. 그러기에 나는 이들의 냉소에 대해 마음편하게 비난할 수 없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기까지의 그 험난함과 비굴함, 피로 썼을 글들과 부정의 부정들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안타까운것은, 그 냉소가 자리잡은 골방의 전주인이었을 열정, 진지함, 타자에 대한 개입들이 너무나도 쉽게-그리고 무참하게 부정되고, 조롱당하는 것이다. 위선이라고, 폭력이라고, 거짓말이라고, 이 비난들을 부정하기에 그 열정의 실패는 이미 적나라하게 치부를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 비난들은 자신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나, 윤리적인 개입들의 경험들을 통해 비판적으로 생산되기보다, 이제 하나의 도식으로, 트렌드로, 매력적인 소비품으로 과잉생산 과잉소비된다고나 할까. 그러기에, 이 신상품의 소비자들은 너무나도 쉽게-타자에 대한 개입, 접근에 대한 어떠한 도덕적 책임도 피할수 있는 - 나아가 아직 이것을 사지 않은 사람들을 쉽게 조롱하고 비웃을 수 있는 우월한 위치에 자리잡을 수 있는 듯 하다. '지식인, 혹은 대학생의 사회적 책임'이라는것을 온전히 믿는것은 아니지만, 이 어구가 말해주는 일말의 진지함과 여러 비루한 것들을 쓰레기통에 던져넣을수는 없기에 씁쓸한 것이다.
주류경제학과 잘 어울릴만한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라는 말에 싫증이 날 수 밖에 없는것은, 우린 아직 근대인이기에, 특히나 지성이 절대적인 우위를 가지는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저 말은 뜨거움을 아주 간단하게 페기시킬 수 있는 구실을 주기 때문이다. 결국 남는것은 중립과, 객관성과, 엄밀한 과학들이겠지만, 이것들은 결국 세상과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개입과 관심, 사랑, 열정, 도덕적 책임, 슬픔, 우울들을 깨끗하게 지워버린 건조한 활자들 뿐이기에.
그러기에, 거추장스러운것들을 배제한 말끔한 활자들이 트렌드가 되어버린 이 시공간에서, 나는 아직도 위선을 떨고, 타자에 대한 선한 폭력들을 저지르고, 세상물정 모르는 치기어린 인간들을 변명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선생의 말처럼, 설령 그것이 '미구에 지배세력에 편승할 지식인이 한때 과시하는 현학 취미'일지언정, 그 현학 취미는 최소한 쉽게 학습하는 냉소에 비한다면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눈꼽만큼은 정당하고, 유용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미 부정의 부정에 익숙해진 인간으로서 참 염치없는 말이긴 하지만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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