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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0년 동안 불온한 것으로 취급받은 항목들을 들어보자. 담배 피기, 남자의 장발, 여성의 짧은 커트머리, 턱수염, 미니스커트, 비키니, 겨드랑이 털, ... 유기농 야채, 군화, 인종 간 섹스. 지금은 브리트이 스피어스의 뮤직비디오(겨드랑이 털과 유기농 야채는 없겠지만)에서 모두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반문화 반란자들은 마치 종말이라고 정해 놓은 날들이 하나 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지나가버리자 최후 심판의 날을 계속해서 뒤로 미룰 수밖에 없어진 종말론자들의 신세가 되었다.  반란의 새로운 상징이 체제에 의해 '포섭'될 때마다 반문화 반란자들은 자신들이 대안의 자격이 있음을 입증하고, 혐오스러운 대중들과 자신들을 분리하기 위해 점점 더 멀리 나갈 수밖에 없다....
 ...근본적인 문제는 심미적 규범과 복장 규범에 대한 반란이 실제로 전복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피어싱과 문신을 하든, 어떤 종류의 옷을 입든, 어떤 음악을 듣든 자본주의 체제의 관점에서 보면 아무런 상관이 없다. 기업들은 회색 플란넬 양복과 바이커 재킷에 관한 한 근본적으로 중립적이다. 스타일과는 관계없이 이런 제품들을 팔기 위해 줄을 선 상인들은 늘 존재할 것이다... 따라서 '대안적'이거나 '쿨'하고 추천할 만한 최소한의 특질이 있는 것이면 어떤 것이든 불가피하게 '주류화'할 것이다. - pp.190-191

 ...다음은 브룩스가 부르주아와 보헤미안의 대립되는 가치의 특성을 묘사한 것이다. "부르주아들은 물질주의, 질서, 규칙, 관습, 합리적 사고, 자제, 생산성을 높이 평가했다. 보헤미안들은 창조성, 반란, 새로움, 자기표현, 반물질주의, 생생한 경험을 찬미했다." 자, 이제 자신에게 물어보라. 이 가운데서 당대의 자본주의 정신을 좀 더 정확히 반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 p.258


 이 책은 예전에 서동진의 글을 떠올리게 한다.

 ... 여기서 말하는 예술적 비판이란 물론 "상상력에게 권력을" "금지를 금지하라"등의 1968 혁명의 에스프리를 압축하는 다양한 이상을 갖는다. 물론 그것이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1968혁명이 제공해준 '상상력'을 통해 조달되었다. 이틀테면 훈육사회의 규범에 저항하는 새로운 세대의 문화혁명의 아이콘이었던 서태지를 비스듬히 바라보면 기업가적 주체가 되어 자신의 지식과 창의성을 투입하여 '나라는 기업(me-Inc.)'을 관리하는 새로운 노동주체의 얼굴이 등장하고, 그리고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족쇄에서 벗어나 오지탐험을 즐기는 새로운여성 주체의 화신인 한비야가 은연중에 불평등과 차별을 비판하는 여성이 아니라 자기주도성과 자기존중감을 통하여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새로운 여성-시민의 모습과 겹쳐지는 것. 이는 물론 새로운 자본주의가 상연하는 이데올로기적 소극의 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서동진, 〈자본주의의 심미화의 기획 혹은 새로운 자본주의의 소실매개자로서의 68혁명〉

  이 책은, 자본주의를 지탱하고 있는 소비사회를 순응을 기반으로 하는 대중사회로 파악 한 뒤 반란rebel을 통해 체제를 전복하려 시도하는 '반문화'에 대한 비판서이다. 이 반문화 신념은 이론적으로는 맑스와 프로이트(특히 북미에서), 역사적은로는 나치와 홀로코스트의 경험에 의해서 강화되어 왔으며 수십년동안 강력한 (혁명적이지 않은)영향력을 행사해 왔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자본주의의 간교한 책략에 히피가 배신하여 여피가 된 것도, 반란이 포섭되어 주류화 된 것도 아닌, 반문화의 실패는 그 자체에 내재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문화적 전복이 정치적 전복으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저자들의 지적은 타당하다.
 나아가 저자들은 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야기하는 급진주의에 대한 반격을 펼친다.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려 했던 환경주의자들과 반물질주의자들의 담론은 아무런 제도적인 개선을 빚어내지 못한 채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데 도움을 주었을 뿐이다. 탈물질주의적이고 탈근대적인 생활양식으로 칭송받는 '웰빙'은 이제 웬만한 상품과 서비스의 광고용 수식어일 뿐.

  하지만 반문화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차 있는 400페이지의 본문을 읽어내려가는 것은 좀 지루하다. 여러 이론가들을 인용하면서 폭넓은 지식을 자랑하지만,  다원주의와 시장경제를 필연적인 관계로 설정하고, 반문화의 비판 대상이었던 전체적인 '동일성'을 긍정하는 것은 다소 순진해 보인다. 예를 들면,

  다시 말해서, 빈곤 축소와 동일성 축소 사이에서 선택을 하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난을 해소하는 쪽을 택할 것이다. 만일 이런 선택의 결과로 방대한 대지 위에 조성된 주택들이 들어선다면, 우리는 이를 자발적 결정의 결과로 순순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동질성은 선택이 아닌 강압의 산물일 때만이 - 사람들이 순응하지 않았다고 벌금을 물거나 또는 속임이나 강압에 의해 자신들이 정말로 원하지 않는 것을 했을 때 - 정말로 문제가 된다.  - p.287

  반문화에 대한 저자들의 대안은, '좋은 제도와 규칙'을 만드는 개혁주의로 마무리된다. 'Think Globally Act Locally'의 구호에서 무시되고 있는 '중간단위-즉 국가'가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개입지점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이를 위해 반문화가 찬양했던 무분별한  '일탈'과 정제된 '불찬성'을 구분하기도 한다. 딱히 틀린말은 아니지만, 급진주의에 대한 비판이라는 길을 통해 너무 순진한 결론을 맺는 것은 아닌가 싶다. 다만 문화적 전복의 세련됨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이들의 마음을, 좀 차분하게 만들기엔 나쁘지 않은 책이다.

 덧1. 이 책의 원제는 Rebel Sell인데, 한국어로는 '혁명을 팝니다'라고 번역되었다. 책의 내용상 '반란을 팝니다'라는 제목이 더 어울려 보인다. 저자들의 비판 대상인 '반란'은 결코 혁명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덧2. 서동진의 글이 참고했다고 밝힌 Boltanski와 Chiapello의 "The New Spirit of Capitalism"이pdf로 올라와있더라. 한 번 인쇄해서 읽어봐야겠다. 영어 글을 읽은지가 천만년전이다.

Posted by 아이스티

2009/01/29 04:27 2009/01/29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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