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웅. 문화/과학 2008년 봄호.

 치졸한 전략과 눈치싸움을 동반한 생존경쟁 또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소시민들에겐 무엇보다 익숙한 코드이고, 따라서 사실상 귀환하고 있는 '억압된 것(real)'이란 다소 싱겁게도 '자본주의적 현실'이었던 것(따지고 보면, 브라운관이 자본주의적 현실을 은폐하고 미화하는 것이 먼 과거의 일만은 아닌 만큼 소득이 아주 없다고 할 수는 없겠다)...

 지젝은 이런 상황에 대해 상호작용(inter-activity)이란 개념과 짝패를 이루는 '상호 수동성'(inter-passivity)의 개념을 제시한다. 새롱누 전자미디어의 출현으로 텍스트나 예술 작품을 수동적으로 소비하던 것에서 한 발 나아가 스크린과 상호작용하며 대화적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현상을 상호작용이라 한다. 지젝은 이러한 상호작용의 이면에는 "대상 자체가 나 대신 수동성을 갖는 것, 그래서 대상 자체가 나 대신 쇼를 즐기고 자발적인 향락의 의무에서 해방시켜 주는 상황"인 상호수동성의 측면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내가 웃지 않아도, 고된 일에 지친 상태로 TV 스크린만 쳐다보고 있어도 나는 코미디 쇼가 주는 긴장 완화를 느낀다. 마치 TV가 나를 대신해 웃어주는 것처럼"... 브라운관 속 그들이 대신 놀아주고, 연애해 주고, 운동도 해준다.

 진실과 외양의 관계는 역전된다... 구성원 전체가 알고 있는 어떤 껄끄러운 일(또한 그들은 다른 사람들도 그걸 알고 있다는 걸 안다)을 그들 중 한 사람이 부주의하게 말해버릴때 모두 깜짝 놀라게 되는 전형적이면서 미묘한 상황이 있다... 왜 그들 모두는 놀라게 되는가? 왜냐하면 그들은 더 이상 알지 못하는 척하지(것처럼 행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허구성과 선정성을 비판하는 '계몽주의자'의 시도는 언제나 실패한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믿음에 대해 경고하면서 그 믿음의 근거가 취약하다는 점을 설파하지만, 사실 그 프로그램을 진지하게 믿은 것은 자신뿐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하고 머쓱해진다. 누구도 스크린 속에 재현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믿지 않는 이상 그것은 별로 위험하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지젝이 즐겨 예를 드는 디카페인 커피와 같다.... "모든 것이 허용된다, 당신은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다. 단 위험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실체가 제거된 한에서만." 따라서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세간의 통념과 달리 해롭지 않다. 그래서 더욱 위험하다. 그것은 포스트모던한 '냉소주의적 현실도피'-"나도 안다. 하지만..."-를 제공하며, 이제 사람들은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실체가 제거된) 현실로 도피한다.

Posted by 아이스티

2008/05/08 00:07 2008/05/08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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