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 들어갔는데 무엇 하러 들어갔는지 잊어버린 것과 같은 상황이다. 다만, 이 경우에는 잊어버린 것이 문화 전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우리는 "경제라는 것이 뭐 하려고 있는 것인가?"묻는 것을 잊고 있다. p.191
이 책은 바로 그 경제, 그것도 방대한 소비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미국식 자본주의-그것이 전지구적으로 보편화 되기 위해선 지구가 4개 더 필요한-에 대한 책이다
'풍요의 시대, 소비중독 바이러스'로서의 어플루엔자, 즉 저자는 미국사회(이는 곧 미국식 자본주의를 추종하는 -한국을 포함한-서구사회에도 적용된다)를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소비에 대한 열광을 하나의 '질병'으로 비유한다. 책에서는 이 질병의 증상과 폐해를 다루며, 이것의 역사와 원인, 그리고 다양한 치료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책의 서술방식은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과 다소 비슷하다. 어떤 하나의 이론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한 주제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접근방식을 폭넓게 소개하고 있다. 소비주의가 가족과 전통적, 종교적 가치들을 위협한다는 보수적인 입장에서부터, 시민이 '소비자'로 전환된 것에 대한 진단, 노동시간의 단축대신 더 많은 임금과 더 많은 소비라는 결과를 낳은 기술발전, 소비의 시장가격이 아닌 생태적 가격에 대한 고찰 등, 소비중독 바이러스에 대한 비판은 수많은 정치적 스펙트럼에서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지난 60년대에서 시민에서 소비자로 돌연변이를 겪었습니다... 소비자가 되었을 때 곤란한 점은 소비자는 다른 소비자들에 대해 아무런 의무도 책임도 당위도 없다는 것입니다. 시민에게는 그런 것이 있습니다. 시민은 동료 시민들에 대해, 도시의 환경과 역사의 보전에 관심을 기울일 의무가 있습니다."(116p)
"...우리가 소비하는 거의 모든 것은 어디 다른 곳에서 온다. 문제는 그 '어디 다른 곳'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 (163p)
"거의 하룻밤 사이에 좋은 생활good life이 상품 생활goods life이 되었다," (244p)
1부에서 이러한 다양한 고찰을 끝낸 이후, 2부에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어떻게 어플루엔자가 광범위하게 자리잡을 수 있었는지를 역사적으로 조망하고, 3부에서는 이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우리는 명백히 우리의 사회적 질병은 개인적 실천만으로는 치유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지지한다"(364)는 언급에서 보이듯이, 이 대안 역시 소비중독에 걸린 개인을 치료하는 의학적 방법에만 그치지 않는다. 소비에 대한 자가진단이나, 미국에서 실제로 행해지고 있는 소비중독 치료 코스들에 대한 소개는 별로 흥미를 끌지 못했지만, 그 이후에는 노동시간의 단축, 단계적 은퇴제, 진정진보지수(GPI)와 같은 신선하고도 실제로 시도되고 있는 대안들을 접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재밌는 점은, 저자의 위트와 문학적인 비유가 돋보인다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먼 미래의 문명들은 우리 시대에 대해 무어라고 말할까? 그들은 종다양성이 재난에 가깝게 쇠퇴한 원인을 찾아낼까? 아니면, 과거의 멸종 원인을 탐구할 때 우리의 과학자들이 그러듯, 그저 어깨만(그때까지 어깨가 남아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들썩하고 말까?.... 하지만 우리 문명의 체면을 위해, 그들이 더 싼 커피와 가솔린과 속옷에 대한 우리의 강박적 욕구가 그 원인이었음을 뒷받침하는 치욕스런 증거는 찾지 못하기를 바라고 기도하자." (1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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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에서 소비자본주의의 부흥기는, 소위 '복지국가의 황금기'와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많은 생산과 많은 소비, 구매력을 담보해주는 수단으로서의 후한 복지급여, 케인즈주의적인 복지(국민)국가. (아직 끝나지 않은 소비자본주의와, 여명기에 접어든 과거의 관대한 복지국가의 부조화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이 과거는 비용절감이라는 자본의 당면과제가 모든 국가들의 사명이 되어 버린 지금 상황에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지당하다. 소비적 복지가(여기서 '소비적'이라는 말은 노동연계를 중심으로 하여 (자본의 이윤과)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입장에서 기존의 복지제도을 낭비적이고 비효율적인 것으로 낙인찍는 맥락과는 다르다) 소비자본주의의 한 축이라고 한다면, 소비자본주의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볼 때 과거의 '좋은 시절'로의 복귀가 '제 3의 길'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복지에 대한 명확한 대안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Posted by 아이스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