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후불제 민주주의』 (2009)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진보적(이라고 스스로를 자처하는) 고등학생이 읽어야 했던 책들이 있었다. '톨레랑스'라는 화두를 던졌던 홍세화의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나 귀화 지식인 박노자의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와 같은 책들.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도 그 중 하나였고, 당시 경제학과를 지망하고자 했던 나는 - 경제학과와 사회학과 중 경제학과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것도 유시민이라는 선배의 존재였다. 사회학과엔 김민석이라는 pushing factor가 있었다-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표절의혹에 시달리기도 했지만"과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를 모조리 읽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을 지지했고, 유시민이 주도해 창당했던 개혁국민정당에 덩달아 가입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는 국회의원이 되었고, 보건복지부장관을 지냈고, 대표적인 친노 인사중 한 명으로 거론되곤 했다. (이 정국에서 그는 노회찬의 표를 압도적으로 잠식하면서 서울시장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다) 나는 예전보다 조금(?) 왼쪽으로 이동한 대학생이 되었다.
 '과거의' 유시민이 썼던 책들의 불온함은 제도교육을 받는 고등학생이었던 '과거의 나' 금지된 것을 범하는 즐거움을 주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 내용도 알차고 유익했다. 수 년이 지나 자칭 '정치적 유배'를 떠나있는 그의 글에선 이제 그러한 불온함을 찾아볼 수 없다. 혹은, 그정도의 불온함은 불온함으로 여기지도 않을 정도로 내가 먹물을 들이킨 것일지도 모른다. (4년제 대학생에게, '지식소매상'의 상품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을수도 있다)하지만 책 후반부를 채우는 자신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자기변명과 반성을 오가는-에서 나이먹은 사람의 보수성의 향기가 풍겨진다.

 2.
 "나는 대한민국이 '아직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아직 할부금을 다 치르지 않은 채 타고 다니는 승용차와 비슷하다. 우리는 아직 민주주의를 온전히 우리 것으로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다 치르지 않았다. 헌법 제1조는 '존재Sein'를 서술한 것이 아니라 '당위Sollen'를 선언한 것일 뿐이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이 되어야 한다고 외치는 것이다." (59p)

 책의 제목이자 전반부의 문제의식은 헌법과 자유, 민주주의를 관통한다. 아직 그 비용을 다 치루지 않았기에, 지도자의 선의에 의존하던 후불제 민주주의는 그것을 지킬 용의가 없는 지도자(MB!)가 들어서는 순간 붕괴의 위험을 맞는다.-마치 바이마르 공화국 이후의 독일처럼- 그것을 저지하기 위한 근거로 저자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부정하기 힘든 '헌법'을 들고온다. 그리고 그 근거는 법치를 앵무새처럼 중얼거리고 있으나 이를 '법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떼법근절과 기초질서확립(을 통한 국가경쟁력 향상)'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정권, 집권 1년만에 책에 쓰일수 있는 무수한 사례를 제공한 자들이 있기에 더욱 적절하다. 하지만 나에게 새로운 내용은 그다지 없었기에, 크게 재미는 없다.
 성격상 자유주의자에 가깝기에, '사회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저자의 반자유주의적 정권인 MB에 대한 비판과 헌법에 대한 그의 견해에는 대체로 동의할수밖에 없다. 하지만 '재산권'을 논하는 장에서 '사회적 자산에 대한 전면적인 집단의 소유는 반드시 전체주의로 귀결된다'는 논리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3. 오히려 재미있던것은 후반부인데, 자신의 정치경험(국회의원, 장권)을 중심으로 한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과 자신이 지지했던 노무현, 참여정부에 대한 변명, 반성, 자기비판 등등이 어우러져 있다. 국회의원이나 장관시절의 경험을 이야기 하는 대목은 마치 '리더쉽' 강연서를 보는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노 전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라는 의미에서 한부분을 인용해보자면,

 "...그는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사회적, 정치적 계약의 산물로 보았기 때문에 국가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면 재신임, 사임, 임기 단축 등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지율이 너무 낮은 대통령이 계속 재임하는 것이 나라와 국민에게 좋은가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제한된 권력을 가진 민주공화국 대통령으로서 언론, 사법부, 헌법재판소, 선관위, 정당 등 다른 권력기관과 수평적인 다툼이나 권한쟁의를 벌이면서 서로 견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 그렇게 행동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이것이 대통령답지 않은 언행이라고 생각했다. 보수 언론과 싸우고 검사들과 논쟁하고 선관위나 헌재와 대립하고 여야 정당들과 갈등을 일으키는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통령이 된 것은 하늘이 내린 운명처럼 무거운 것인데 노무현 대통령은 그 소명을 가볍게 여긴다는 것이었다..." 209p


 4. 시절이 수상한 만큼 서울시장후보로 언급이 되고 있기 하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 보여지는 태도로 추측하건대, 쉽지 않을 것 같다. 수년간에 걸친 자신의 정치실험(개혁국민정당과 열린우리당, 참여정부)이 결과적으로 실패했고, 정치적 동지를 떠나보낸 상황에서 다시 그 길을 택할지... 흠

 덧. 여러 측면에서 이 책은  Naomi Wolf의 the End of America와 많이 닮았다. '자유민주주의'적 원칙에 대한 강조와, 출판 당시 집권하고 있던 보수적, 퇴행적 정권에 대한 비판을 목적으로 저술되었을 법 하다는 점. 유시민이 들고나오는 '헌법애국주의'와 Naomi Wolf가 강조하는 '건국 선조들의 정신'는 크게 엇갈리지 않는다. 하지만 양자 모두, '민주주의'라는 화두를 들고 나옴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언급은 깊지 않다는 점도 흥미롭다.

Posted by 아이스티

2009/06/06 00:49 2009/06/06 00:49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imbk2.nazio.net/rss/response/192

Trackback URL : http://imbk2.nazio.net/trackback/192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2 : 3 : 4 : 5 : 6 : 7 : 8 : 9 : ... 186 : Next »

블로그 이미지

플라스틱 지붕과 벤치

- 아이스티

Notices

Archives

Calendar

«   2010/09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Site Stats

Total hits:
94939
Today:
18
Yesterday:
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