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de Graaf『어플루엔자』 (2002)


 "방에 들어갔는데 무엇 하러 들어갔는지 잊어버린 것과 같은 상황이다. 다만, 이 경우에는 잊어버린 것이 문화 전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우리는 "경제라는 것이 뭐 하려고 있는 것인가?"묻는 것을 잊고 있다. p.191

 이 책은 바로 그 경제, 그것도 방대한 소비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미국식 자본주의-그것이 전지구적으로 보편화 되기 위해선 지구가 4개 더 필요한-에 대한 책이다
 '풍요의 시대, 소비중독 바이러스'로서의 어플루엔자, 즉 저자는 미국사회(이는 곧 미국식 자본주의를 추종하는 -한국을 포함한-서구사회에도 적용된다)를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소비에 대한 열광을 하나의 '질병'으로 비유한다. 책에서는 이 질병의 증상과 폐해를 다루며, 이것의 역사와 원인, 그리고 다양한 치료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책의 서술방식은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과 다소 비슷하다. 어떤 하나의 이론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한 주제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접근방식을 폭넓게 소개하고 있다. 소비주의가 가족과 전통적, 종교적 가치들을 위협한다는 보수적인 입장에서부터, 시민이 '소비자'로 전환된 것에 대한 진단, 노동시간의 단축대신 더 많은 임금과 더 많은 소비라는 결과를 낳은 기술발전, 소비의 시장가격이 아닌 생태적 가격에 대한 고찰 등, 소비중독 바이러스에 대한 비판은 수많은 정치적 스펙트럼에서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지난 60년대에서 시민에서 소비자로 돌연변이를 겪었습니다... 소비자가 되었을 때 곤란한 점은 소비자는 다른 소비자들에 대해 아무런 의무도 책임도 당위도 없다는 것입니다. 시민에게는 그런 것이 있습니다. 시민은 동료 시민들에 대해, 도시의 환경과 역사의 보전에 관심을 기울일 의무가 있습니다."(116p)
 "...우리가 소비하는 거의 모든 것은 어디 다른 곳에서 온다. 문제는 그 '어디 다른 곳'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 (163p)
 "거의 하룻밤 사이에 좋은 생활good life이 상품 생활goods life이 되었다," (244p)

 
1부에서 이러한 다양한 고찰을 끝낸 이후, 2부에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어떻게 어플루엔자가 광범위하게 자리잡을 수 있었는지를 역사적으로 조망하고, 3부에서는 이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
 "우리는 명백히 우리의 사회적 질병은 개인적 실천만으로는 치유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지지한다"(364)는 언급에서 보이듯이, 이 대안 역시 소비중독에 걸린 개인을 치료하는 의학적 방법에만 그치지 않는다. 소비에 대한 자가진단이나, 미국에서 실제로 행해지고 있는 소비중독 치료 코스들에 대한 소개는 별로 흥미를 끌지 못했지만, 그 이후에는 노동시간의 단축, 단계적 은퇴제, 진정진보지수(GPI)와 같은 신선하고도 실제로 시도되고 있는 대안들을 접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재밌는 점은, 저자의 위트와 문학적인 비유가 돋보인다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먼 미래의 문명들은 우리 시대에 대해 무어라고 말할까? 그들은 종다양성이 재난에 가깝게 쇠퇴한 원인을 찾아낼까? 아니면, 과거의 멸종 원인을 탐구할 때 우리의 과학자들이 그러듯, 그저 어깨만(그때까지 어깨가 남아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들썩하고 말까?.... 하지만 우리 문명의 체면을 위해, 그들이 더 싼 커피와 가솔린과 속옷에 대한 우리의 강박적 욕구가 그 원인이었음을 뒷받침하는 치욕스런 증거는 찾지 못하기를 바라고 기도하자." (168p)

 = = = = = = = = = = = = = = = = = = =
  서구에서 소비자본주의의 부흥기는, 소위 '복지국가의 황금기'와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많은 생산과 많은 소비, 구매력을 담보해주는 수단으로서의 후한 복지급여, 케인즈주의적인 복지(국민)국가. (아직 끝나지 않은 소비자본주의와, 여명기에 접어든 과거의 관대한 복지국가의 부조화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이 과거는 비용절감이라는 자본의 당면과제가 모든 국가들의 사명이 되어 버린 지금 상황에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지당하다. 소비적 복지가(여기서 '소비적'이라는 말은 노동연계를 중심으로 하여 (자본의 이윤과)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입장에서 기존의 복지제도을 낭비적이고 비효율적인 것으로 낙인찍는 맥락과는 다르다) 소비자본주의의 한 축이라고 한다면, 소비자본주의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볼 때 과거의 '좋은 시절'로의 복귀가 '제 3의 길'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복지에 대한 명확한 대안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Posted by 아이스티

2009/06/18 02:33 2009/06/18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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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후불제 민주주의』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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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진보적(이라고 스스로를 자처하는) 고등학생이 읽어야 했던 책들이 있었다. '톨레랑스'라는 화두를 던졌던 홍세화의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나 귀화 지식인 박노자의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와 같은 책들.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도 그 중 하나였고, 당시 경제학과를 지망하고자 했던 나는 - 경제학과와 사회학과 중 경제학과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것도 유시민이라는 선배의 존재였다. 사회학과엔 김민석이라는 pushing factor가 있었다-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표절의혹에 시달리기도 했지만"과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를 모조리 읽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을 지지했고, 유시민이 주도해 창당했던 개혁국민정당에 덩달아 가입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는 국회의원이 되었고, 보건복지부장관을 지냈고, 대표적인 친노 인사중 한 명으로 거론되곤 했다. (이 정국에서 그는 노회찬의 표를 압도적으로 잠식하면서 서울시장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다) 나는 예전보다 조금(?) 왼쪽으로 이동한 대학생이 되었다.
 '과거의' 유시민이 썼던 책들의 불온함은 제도교육을 받는 고등학생이었던 '과거의 나' 금지된 것을 범하는 즐거움을 주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 내용도 알차고 유익했다. 수 년이 지나 자칭 '정치적 유배'를 떠나있는 그의 글에선 이제 그러한 불온함을 찾아볼 수 없다. 혹은, 그정도의 불온함은 불온함으로 여기지도 않을 정도로 내가 먹물을 들이킨 것일지도 모른다. (4년제 대학생에게, '지식소매상'의 상품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을수도 있다)하지만 책 후반부를 채우는 자신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자기변명과 반성을 오가는-에서 나이먹은 사람의 보수성의 향기가 풍겨진다.

 2.
 "나는 대한민국이 '아직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아직 할부금을 다 치르지 않은 채 타고 다니는 승용차와 비슷하다. 우리는 아직 민주주의를 온전히 우리 것으로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다 치르지 않았다. 헌법 제1조는 '존재Sein'를 서술한 것이 아니라 '당위Sollen'를 선언한 것일 뿐이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이 되어야 한다고 외치는 것이다." (59p)

 책의 제목이자 전반부의 문제의식은 헌법과 자유, 민주주의를 관통한다. 아직 그 비용을 다 치루지 않았기에, 지도자의 선의에 의존하던 후불제 민주주의는 그것을 지킬 용의가 없는 지도자(MB!)가 들어서는 순간 붕괴의 위험을 맞는다.-마치 바이마르 공화국 이후의 독일처럼- 그것을 저지하기 위한 근거로 저자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부정하기 힘든 '헌법'을 들고온다. 그리고 그 근거는 법치를 앵무새처럼 중얼거리고 있으나 이를 '법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떼법근절과 기초질서확립(을 통한 국가경쟁력 향상)'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정권, 집권 1년만에 책에 쓰일수 있는 무수한 사례를 제공한 자들이 있기에 더욱 적절하다. 하지만 나에게 새로운 내용은 그다지 없었기에, 크게 재미는 없다.
 성격상 자유주의자에 가깝기에, '사회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저자의 반자유주의적 정권인 MB에 대한 비판과 헌법에 대한 그의 견해에는 대체로 동의할수밖에 없다. 하지만 '재산권'을 논하는 장에서 '사회적 자산에 대한 전면적인 집단의 소유는 반드시 전체주의로 귀결된다'는 논리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3. 오히려 재미있던것은 후반부인데, 자신의 정치경험(국회의원, 장권)을 중심으로 한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과 자신이 지지했던 노무현, 참여정부에 대한 변명, 반성, 자기비판 등등이 어우러져 있다. 국회의원이나 장관시절의 경험을 이야기 하는 대목은 마치 '리더쉽' 강연서를 보는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노 전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라는 의미에서 한부분을 인용해보자면,

 "...그는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사회적, 정치적 계약의 산물로 보았기 때문에 국가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면 재신임, 사임, 임기 단축 등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지율이 너무 낮은 대통령이 계속 재임하는 것이 나라와 국민에게 좋은가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제한된 권력을 가진 민주공화국 대통령으로서 언론, 사법부, 헌법재판소, 선관위, 정당 등 다른 권력기관과 수평적인 다툼이나 권한쟁의를 벌이면서 서로 견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 그렇게 행동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이것이 대통령답지 않은 언행이라고 생각했다. 보수 언론과 싸우고 검사들과 논쟁하고 선관위나 헌재와 대립하고 여야 정당들과 갈등을 일으키는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통령이 된 것은 하늘이 내린 운명처럼 무거운 것인데 노무현 대통령은 그 소명을 가볍게 여긴다는 것이었다..." 209p


 4. 시절이 수상한 만큼 서울시장후보로 언급이 되고 있기 하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 보여지는 태도로 추측하건대, 쉽지 않을 것 같다. 수년간에 걸친 자신의 정치실험(개혁국민정당과 열린우리당, 참여정부)이 결과적으로 실패했고, 정치적 동지를 떠나보낸 상황에서 다시 그 길을 택할지... 흠

 덧. 여러 측면에서 이 책은  Naomi Wolf의 the End of America와 많이 닮았다. '자유민주주의'적 원칙에 대한 강조와, 출판 당시 집권하고 있던 보수적, 퇴행적 정권에 대한 비판을 목적으로 저술되었을 법 하다는 점. 유시민이 들고나오는 '헌법애국주의'와 Naomi Wolf가 강조하는 '건국 선조들의 정신'는 크게 엇갈리지 않는다. 하지만 양자 모두, '민주주의'라는 화두를 들고 나옴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언급은 깊지 않다는 점도 흥미롭다.

Posted by 아이스티

2009/06/06 00:49 2009/06/06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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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치독일시대 청소년들의 모습을 읽어낼 수 있는 책. 열명 남짓의 십대 청소년들이 등장하며,  연대기순으로 서술되는 십여년간의 독일 역사에 이들을 등장시킨다. 공산주의자에게 살해당해 독일판 이승복이 된 헤르베르트 노르쿠스에서,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히틀러의 조직에 들어간 아이들, 학교와 대학에서 반나치활동(백장미단)을 벌이다 처형당한 이들, 유대인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청소년들의 생각과 삶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이들과 부모세대의 갈등이 흥미롭다. 1차 세계대전의 참혹함과 패배의 경험을 통해 또다른 전쟁을 준비하는 히틀러와 나치당에 거부감을 가졌던 부모 세대와, 전쟁의 경험이 없이 히틀러의 빛나는 미래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고자 했던 자녀세대간의 갈등. 충성스럽지 않은 자신의 부모들을 당국에 고발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한다. 전쟁의 경험과 이로 인한 세대의 갈등은 한국현대사와도 크게 맞닿아 있는듯 하다.

Posted by 아이스티

2009/05/26 00:33 2009/05/26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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